2025. 4. 11. 15:23ㆍ1 Scene

🎬 <8월의 크리스마스> – 사라지는 사람의 기록, 사진이라는 이름의 유서
장면이 끝나고, 음악이 잦아들어도 삶은 계속됩니다.
EARTH LOG는 그 여운 속에 남겨진 마음을 기록합니다.
그는 사진사다.
골목 끝, 오래된 사진관을 지키고 있는 사람.
흑백 배경의 증명사진, 가족사진, 돌잔치, 졸업식, 장례식.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떠난다.
그는 그 순간을 남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시간의 바깥에 서 있다.
남의 인생을 담아주던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도 담지 못한 채 사라지려 한다.
TV 리모컨을 들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는 설명하다가 화를 낸다.
작고 사소한 것에 예민해진다.
그리고 방을 나간다.
하지만 그 짧은 짜증 속엔
삶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의 죄책감과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는 안다.
자신이 떠나면 이 공간은 멈춘다.
아버지는 TV 전원조차 혼자서 켜지 못할 수도 있다.
사진관도, 집도, 시간도, 그대로 두고 자신만 사라진다.
그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사진은 멈춘 시간이지만,
그는 점점 지워질 시간이 되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붙잡는 일을 하던 사람이
자신의 시간은 끝내 붙잡지 못하고 떠난다.
그러니 리모컨을 두고 나오는 그 장면은,
짜증이 아니라 유서였다.
말로 하지 못한 미안함을,
살아가는 방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던 작은 몸짓이었다.
그의 사진 속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지만,
그는 점점 웃지 않는다.
빛을 맞은 필름은 그대로지만,
그 필름을 인화할 사람은 이제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끝자락에서
소소한 기억과 미안함을 남기는 사람의 조용한 방식을 따라간다.
사진이란,
결국 남겨질 사람을 위한 유서인지도 모른다.
지워질 사람은 그렇게,
한 장 한 장 필름 속에
자신의 부재를 조심스럽게 남겨두고 간다.
@EARTH LOG
대표 이미지 출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 Myung Film, CJ Entertainment / 본 이미지는 비영리 리뷰 목적에 한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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