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 우리는 정말 ‘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끝났지만, 삶은 계속됩니다.
EARTH LOG는 장면과 장면 사이, 그 여백에 남겨진 마음을 기록합니다.
···
토마토 축제의 선연한 붉음이, 현재 시점 에바의 집 외벽을 뒤덮은 붉은 페인트로 되돌아온다.
희열로 시작한 색은 죄책과 혐오로 굳었다.
이 붉은 잔향 속에서 에바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디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났을까?”
갓난아기 케빈의 밤새 이어지던 울음, 어린 시절부터 드러난 냉소, 사춘기에 키워 가던 폭력성.
아빠 프랭클린은 ‘남들처럼’ 아들을 보려 하지만, 에바의 눈에는 “경고 신호”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진다.
욕실 거울에 케첩으로 쓰여 있던 질문—“EVIL?” 그 한 글자는 에바가 자신에게 던진 절망적 수사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어머니’라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다.
그리고 체육관의 참사.
붉은 사이렌 소리가 이어지는 그 날, 에바는 더 이상 “우리 아이가 조금 특이하다”라는 문장으로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도시는 그녀의 집 창문에 페인트를 던지며 “네가 낳은 괴물”이라고 소리친다.
교도소 면회실에서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왜 그랬니?”
케빈은 잠시 숨을 삼키고 답한다.
“예전엔 알았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악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해를 기대하지만, 설명 없는 침묵만 돌아온다.
구원보다 어려운 건, 무너지지 않고 그 이후를 살아내는 일.
벽을 덮은 붉은 페인트는 지워지지 않지만, 에바는 내일도 그 벽을 닦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라는 역할은, 설명되지 않는 악마성 앞에서도 “끝까지 바라보는 사람”으로 남는 일일지 모른다.
···
장면은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그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EARTH LOG
대표 이미지 출처: 영화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공식 스틸 /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 및 배급사에 있습니다.